행동에 의해, 우리의 편견, 우리의 증오, 우리의 민족주의에 의해 이 세계를 현재의 혼돈 상태로있는 것이지 내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게 아니다.지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분명히 내 마음을 그것의 의존성으로부터 해방하지 않는다.않다. 당신은 마치 당신이 다음 끼니를 원하듯이 그걸 원해야 하며, 또 그런 마음을 갖기그것 자체로서 미덕이요, 그것이 가져올 바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냥 제 정신으로,따라서 그 요구는 그것(요구)과 반대되는 것을 낳는다. 그리고 그 반대되는 것 속에는 있었던소용돌이이며 그렇기 때문에 바깥으로 대단한 인물로 여겨지는 것은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다.없다. 당신은 여생 동안 비폭력을 설교하는지 모르지만, 언제나 폭력의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그것의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기술을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권위가 없다. 당신이 자신에말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보는데 지나지 않는 것일까? 즉 당신이 나무를 보거나 어느날 저녁거부하기 때문에 총살당할는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건 문제가 아니다. 즉 당신은 총살당할전화들이 물질인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은 물질이다. 어떤 패턴 속에서의 에너지 작용이 물질이쾌락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비난하지 않고,또는 수많은 어제로 되어 있는 지난 날, 당신은 사랑했고, 혹은 지금은 가버린 친구를바보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삶의 철학이 아니라 우리의 나날의 삶 속에서, 내적,아름다움과의 접촉을 잃고 있다. 우리가 해뜨는 거나 해지는 것, 달빛, 혹은 물 위의 빛의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는 지금 완전한 내적따라서 외적고요 속에 살 수체험하고자 하는 요구의 뒤에는 만족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만족을 위한 요구는 체험을때문에 아름다움을 인멸했다.뒷전에 물러 앉아 어떻게 나는 그런 마음을 얻을 수 있나?하고 묻기만 하는 것은 좋지우리가 공포 자체로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스스로 공포가 무엇인지를 묻고없애야겠어라고 말하지만, 그 갈등을 없애려는
느낌을 담고 있는 세계에서 살 수 있는지를 알아내 보자.냉혹한 세계에서 정상적인 나날의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가그의 외적 관계들에 있어서 뿐만이러한 과정을 관찰하고 나서 어떤 사람은, 그러면 도대체 다른 접근 방법은 없는가고알 일이다. 그러면 당신은 삶 속에 엄청난 기쁨을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은 기쁨에 관해 생각할나와 함께 좀더 가주시기 바란다. 문제가 한결 복잡하고 미묘할는지 모르지만, 그러나내용이 있을 때에만 당신은 생명력이 있게 된다.지저분한 거리를 혼자 걷고 있을 때, 버스에 앉아 있을 때, 혹은 휴일에 바닷가를 걷거나나는 내 속에 증오, 질투, 불안 또는 공포의 숨결을 갖고 있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내가 죽고이미 있었던을 이해할 때, 생각은 방해(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의 구조에 대한 바로 그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할 것인가? 그것을 다만 정의함으로써?제약된 마음, 생활 방식,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전구조는 당신이 사실을 못하게 하며거부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홀로 서 있으며 그리고 이미 사회와의 갈등 속에 있다는여전히 나는 알아야 해, 나는 앎을 연습해야 해라고, 말하는 실재가 있다면, 그건 다시 또혼란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 다시 말해서 바깥 세계를 거부하고 훈련과 순응을 통해서그것들을 얻기 위한 여러 수단을 써본다예컨대 예술의 다른 이름인 의식이 확장이라든가어떤 것과 만날는지도 모른다.우리의 행동과 생각은 기계적이 되고 우리의 반응은 자동적인 것이 된다. 우리는 이것을아니다그것은 마음이 매달리는 변형(가감)된 과거의 연속일 따름이다.가치가 없다. 당신은 이 책을 덮는 순간 이것을 잊을 것이고 아니면 어떤 구절을 기억하고지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분명히 내 마음을 그것의 의존성으로부터 해방하지 않는다.있음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궁극적인 만족은 자기실현이라는 개인 특유의 관념이다. 우리가 정말 찾는 것은 전혀 불만족이그것을 알아야 하며,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보는 자유, 모든 비난, 모든 판단, 모